시차가 느껴지지 않아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점심 즈음 기어나와 숙소 근처 로컬 식당에 갔다. 방콕의 로컬 식당은 1인분에 40-60바트 정도 한다. 볶음밥 두개에 태국 대표 콜라인 Est콜라 한병, 얼음컵 두개 해서 100바트 정도 내고 점심식사를 했다. 주인 할머니랑 손자인지 아들인지 두 분이 친절하셔서 음식 이름도 물어보고 뭔가 손짓 발짓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서로 전달은 잘 안된 것 같지만 어쨌든 재미있었다. 태국까지 오지 않았으면 인생에 마주칠 일 한 번 없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말도 안 통하는데 낄낄낄. 나는 이런 여행이 왜 이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점, EST콜라는 무진장 저렴한 태국 콜라이다. 현지사람들은 이에스티콜라라고 안하고 이에스콜라라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밍숭밍숭하고 탄산도 거의 없고, 제로도 아니다. 그냥 물처럼 꿀떡꿀떡 들어간다. 여행기간 내내 나의 밥친구였다.
구글 지도 썸네일은 무시무시한데 실제로 보면 그냥 태국 오래된 밥집이다.
태국 왕궁에 들어갈땐 긴바지가 필요하다 하여, 집 근처에서 코끼리 바지 사서 왕궁에 갔다. 반바지 입고 갔다가 앞에서 코끼리 바지 겹쳐입고 들어갔다. 없으면 바지를 빌려주기도 하니 없이 가도 상관은 없지만, 빌리는 것도 줄을 서야하니 그냥 하나 들고가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도슨트 오디오를 빌려주기도 하지만 한국어 안내 책자를 무료로 주기때문에 그걸 받아서 건물들 설명 읽으면서 돌아다녔다. 왕궁의 하이라이트는 에메랄드 불상인데,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고있다고 한다. 나는 여름에 가서 여름의상을 입은 불상을 볼 수 있었다. 태국 국민들에게 엄청 성스럽고 중요한 공간이니 나도 무릎꿇고 앉아서 머리를 연신 바닥에 대고 이번 여행에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내 나름대로 기도 했다.
불지옥이라는 태국의 4월에도 궁 안은 정말 시원했다. 덕분에 천천히 제단과 내부 장식을 둘러보면서 요새말로 전통적인 태국의 '추구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극한의 화려함. 한국의 절이나 궁은 절제되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태국의 사원과 궁은 얇은 선 하나도 금으로 둘러 반짝 반짝 빛이 났다.
신발신으려고 나오는데 어떤 남미 여행자가 내 팔을 붙들었다. 본인은 게이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그 친구가 그쪽인 듯 하여 기분이 엄청 나쁘진 않았다. 어디서 아시안이 사진 잘찍는다는걸 들어서 그런걸까? 갑자기 자기 프사용으로 사진좀 찍어달라고 했다. 역광이라서 얼굴이 잘 안 나와서 인물사진모드로 요리조리 찍다가 한장 건져서 겨우 탈출했다.
나와서 끈적국수집에 가보려고 했다. 택시를 타도 되는데, 구글맵으로 쳐보니 버스로 단 몇 정거장이면 바로 국수집 앞에 내려주더라. 어차피 날도 더워 땀을 이미 줄줄 흘린 상태라 로컬 버스 한번 타보겠냐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탄단다. 방콕 와서 본 버스들은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버스는 정말 미래도시에서 온 듯 세련된 디자인에 에어컨이 나오고, 어떤 버스는 창문도 다 없고 장난감처럼 차벽이 호들호들 얇았다. 출구로 나와서 한 100m정도 걸으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택시, 툭툭 기사님들이 줄지어 계신다.
우리가 버스정류장에 서있으니 택시기사님중 한 분이 오셔서 어디가냐고 물어보신다. 우리는 버스를 탈거라고, 카오산 로드 쿤댕 꾸어이짭 유안(끈적국수집 이름)에 갈거라니 허허 웃으신다. 몇 번 버스 타야되는지 재차 알려주시고 손 부채질로 덥다 바디랭귀지 하시며 그늘에 있는 기사님들 의자를 가리키며 와서 쉬라고도 해주셨다. 버스가 곧 온다고 되어있어서 그냥 컵쿤카 컵쿤카 하면서 손사래를 쳤는데, 이게 웬걸 버스가 도착 예정시간이 지나도 안온다. 아마 버스가 금방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저씨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어쨋든 10분정도 더 기다리니 정말 버스가 왔다. 버스가 왔을 때, 친구와 나는 "와 이게 오네" 하면서 박수를 쳤다. 버스비는 인당 8바트, 300원정도 하는 것이다. 찰랑찰랑 돈 통을 흔들면서 버스 안내양이 돈을 걷는다. 근데 안내양의 표정이 '이게 맞아?'라는 표정. 아마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이 타서 당황하신 것 같다. 어쨋든 자리 잡고 앉아서 문이 죄다 뜯겨나간 창문으로 도심을 구경하면서 연신 외쳤다. "와 버스 너무 신기하다" "버스가 부서질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재밌다" 버스가 온 것 자체가 너무 신나고 들떴던 것 같다. 정말 몇 정거장만에 바로 끈적국수 집 맞은편에서 내렸다.
끈적국수집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와서 드라마도 찍고 그랬던 것 같다. 끈적국수는 정말 끈적하진 않고 그냥 전분을 풀어 되직한 국물의 국수였다. 아마 태국 전통식은 아니고 베트남식인듯 하다. 벽에 베트남 국수라고 써있다. 맛은 정말 후추를 뿌린 감자면이랑 90% 이상 일치한다. 대기업의 식품 개발 연구원들은 해외를 다니면서 이런맛 저런맛 많이 느껴보다가 제품으로 내는걸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맛이 비슷했다. 스프링롤 한 접시에 국수 한 그릇 먹고 나와서 더운데 어디서 좀 쉴까 싶었다. 아까 버스에서 내릴 때 바로 앞에 있던 카페가 기억이 나서 그 카페로 들어갔다.
이 카페는 외국인들만 가득했는데, 한국처럼 카페, 디저트, 맥주 등을 파는 정말 정말 분위기 좋은 카페였다. 가격은 그냥 한국 물가정도 생각하면 된다. 에어컨 시원하고 인테리어도 정말 멋있어서 갑자기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여기서 1시간 넘게 쉬면서 수다도 떨고 땀도 좀 식혔다.
끈적국수집은 카오산로드 부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온김에 카오산 로드에 들렀다. 이미 송끄란 기간은 어제로 연휴가 끝났기 때문에 광란의 파티는 아니었고, 우리는 낮에 도착해서 클럽 뿜뿜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나, 동행한 친구나 클럽이나 바를 잘 가지도 않고, 나는 술도 안 마시기 때문에 특별히 아쉽지는 않았다. 여행자 마을인 만큼 여러 국가의 음식점이 많았고, 대마초를 파는 가게나 노천 카페도 많았다. 이것 저것 기념품도 좀 사고, 우리도 야외에 앉아 콜라 한잔씩 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이전에 서술했듯이 우리 숙소는 나나/아속역의 중간에 위치해있다. 번화가이니 밥먹을데가 많겠지 싶어 해가 지고는 나나역으로 향했다. 나나역은 유흥의 성지라고 한다. 나는 사실 나나역이 왜 번화가인지는 모르고 숙소를 예약했던 터라 나나역에 도착해서야 분위기를 파악했다. 거리에는 더운 날씨에도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이 혼자 뜨문 뜨문 서있었다. 거리에서 트월킹을 하는 여인도 있었다. 근데 엄청 불건전한 그런 느낌보다 이태원의 저녁 분위기같은 느낌이었다. 길거리에서 조각피자도 사먹고, 엄청 핫플처럼 보이는 큰 식당에 들어가서 팟타이와 똠양꿍을 먹었다. 그
냥 아무데나 막들어간거라 주소도 이름도 모르겠지만, 비싼만큼 맛은 있었다. 밥먹고 나와서 슬슬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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